부탁을 해결하고 돌아가는 길의 그가 멈춘 것은 단순히 눈에 익은 외형의 생물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이곳의 생물들은 알고 있는 것과 조금 다른 외형을 하고 있었으나 그것은 그의 기억과 거의 비슷한 모습이었다. 으으음. 좋은 이름이 좀처럼 떠오르지를 않아…. 생물의 창조자인듯한 이가 그 옆에서 고뇌하는 중이었다.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불리게 될 등록명인데...
“이번 학기 과제는 2인 협주입니다.” 대학에서 가장 피하고 싶은 일 중 하나인 조별과제를 선언했음에도 놀라는 학생은 없었다. 협주는 이 학교 음대에 다니는 관현악과의 전공자라면 2학년과 3학년 때 전공필수과목에 포함된 것으로 유명했다. 게다가 강의실에 있는 학생들은 3학년. 이미 작년의 과제를 거친 경험자들이었다. 그랬기에 교수도 설명을 덧붙이지...
“선배. 그 글 봤어요?” 오늘만 해도 벌써 몇 번째의 질문이던가. 단과대학 입구에서 전공 강의실이 있는 층까지 올라오는 동안 반복되던 물음이었다. 알고 있는 이야기가 길어지기 전에 휘틀로다이우스는 응, 아주 탈탈 털렸던데? 하는 대답을 똑같이 돌려주었다. “이러다 전화번호까지 돌겠어요. 이자르 선배도 조심하라고 해요.” 그가 예상한 화제가 맞았는지 후배...
차디찬 바람이 호흡을 통해 코와 목을 찢으며 폐부로 스몄다. 숨을 쉬는 것이 이렇게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던가. 날숨과 함께 목에서 올라오는 선명한 피 냄새에 하디는 헛구역질을 간신히 참아내며 걸었다. 걷기 힘들어서 질질 끌린 발자국이 설원 한복판에 기다란 선을 그렸다. 눈보라가 거셌다.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마물은 그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한 듯했다. 다행인 ...
*개인적인 아젬 설정 주의 교내는 어수선했다. 캠퍼스뿐 아니라 강의실까지 어수선함이 침범해 있었다. 누구도 강의에 집중하지 못하고 붕 떠 있었다. 아무리 중간고사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지만 정도가 심한 효란이었다. 강단에 선 교수가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는 눈썹을 내리며 난감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강의하기 좋은 상...
* 82레벨 퀘스트 “더는 나눌 이야기가 없어 보이는군.” 눈에 띄게 침울해진 쌍둥이의 반응에도 군단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냉정하게 대화의 끝을 알렸다. 그들의 말을 듣는 척도 하지 않고 차창 밖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던 그가 손짓하자 근처에 대기 중이던 제국군들이 모여들었다. 일사불란한 움직임이었다. 절도있는 걸음으로 정렬한 그들이 제각기 무기를 뽑아 들었...
쿠가네는 얼마 만이더라. 그는 새삼스레 감개에 젖어 항구를 돌아보았다. 거칠게 불어오는 바람이 길게 자란 머리칼을 흩뜨려 놓았다. 다날란의 거주구역에 자리를 잡은 뒤로 나오는 일이 있었던가. 외출이라고는 총사령부와 관련된 임무들로 가끔 림사 로민사에 들렀던 것이 전부다. 진득하게도 붙어있었군. 사람을 쉽게 갈아치우던 그로서는 드물게 긴 시간이었다. 뭐, ...
서서히 빠지는 고급 외제차들의 행렬을 바라보던 휘틀로다이우스가 짧은 숨을 뱉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고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특기였으나 고압적으로 굴며 자신을 어필하려는 노친네들의 앞에서 평정을 가장한 채 비위를 맞추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 가볍게 불만을 토해낼 수도 있었으나, 얼마 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호수 표면은 햇빛이 부딪혀 윤슬이 반짝이고 있었다. 누구라도 감탄할 아름다운 풍경이었으나 그는 무상한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며 낚싯대를 던졌다. 마침 가지고 왔던 가방에 낚싯대와 루어가 들어있었기 때문이지 특별히 낚고 싶은 물고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모험을 다니며 세계 곳곳을 누비는 그에게 낚시란 시간을 보내는 취미 중 하나였는데 이곳에서 낚시를 하는 것...
남자가 한 손에 쥔 총부리에서 가느다랗게 연기가 피어올랐다. 조금 전까지 근처의 마물을 일방적으로 학살하던 무기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적요한 반응이었다. 원래 개발되어 있던 무기조차 제대로 다루는 사람이 적은 상황에도 기공방의 운영자가 새로운 기술의 개발에 열을 올리는 이유가 있었다. 혹여나 마물과 착각당해 불시에 습격받을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비행 초...
가벼운 이야기 소리가 오가던 토론관은 안으로 들어오는 시민들의 틈에 붉은 가면을 쓴 사람이 섞여드는 것을 발견하자 금세 조용해졌다. 벌써 세 번째의 협의였다. 들어오는 이들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먼저 앉아있던 이들은 하얀 가면 일색인 곳에서 눈에 띄는 붉은색의 수를 헤아린다. 열셋. 무심결에 하나를 더 찾던 이들은 돌연 깨달은 사실에 가면 아래의 입술을 ...
눈을 뜬 순간, 그라하는 자신과 함께 잠들었던 탑 또한 깨어났음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잠들기 직전 예상하던 이유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는 꽤 이르게 깨어났고 열린 탑의 문으로 들어온 손님이 이른 기상의 이유임을 알았다. 주변을 둘러보던 그는 자신이 터무니없이 커다란 옥좌에 앉아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내가 이런 곳에서 잠들었었나? 실제로는 그리 오래 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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